국민권익위원회가 ‘하도급계약 내역공개’란 극단적 카드를 꺼내들었다.
원하도급 건설사는 영업기밀 노출 등의 이유로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고 전문가들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사뭇 닮은, 새 제도 특성상 평지풍파(平地風波)만 일으킬 뿐, 단기에 강행할 대책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다.
계약내역 공개 이유와 방법은
권익위가 하도급계약 공개를 결정한 이유는 하도급계약률 등의 내역만 보면 계약의 적정 여부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계약이 쉽게 포착되기 때문에 감사나 적정성심사 등으로 비위를 적발하는 것은 물론 뿌리깊은 하도급 관련 비리 유혹까지 잠재울 수 있다.
벤치마킹 대상은 성남시의 ‘공사계약 특수조건’이다. 도급액 10억원 이상 공사의 계약 이전에 응찰업체로부터 하도급 내역공개 동의를 받은 후 홈페이지에 1년 이상 공개해 시민들이 열람하는 방법이다. 성남시의 공개대상은 도급자 및 하도급자 업체정보, 하도급사유, 하도급공종, 하도급금액, 하도급비율, 하도급공사기간 등이다.
권익위의 고민은 민간계약 영역, 그것도 기업의 영업노하우가 담긴 정보를 정부가 공개토록 강요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정보를 공개해도 건설사나 하수급업체의 정당한 이익침해로 볼 증거가 없다(대법원 2009년 11월27일 선고 2009두 14262판결)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국정운영 투명성 등을 보장하기 위해 특정한 비공개 사유가 없는 한 해당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서울고법 2009년 9월18일 선고 2008누32425)는 법원 판례를 고려하면 문제가 안 된다는 게 권익위 입장이다.
권익위가 더 우려하는 부분은 건설업계의 반발이며 전문가 자문요청 때 강조한 부분도 민간기업의 위헌 주장 등 분쟁을 완충할 자료공개 범위, 절차, 방법 쪽이다. 2007년 3월 ‘건설공사 입찰방법 및 하도급 제도시행 계획안’의 일환으로 하도급계약 자료공개를 추진했지만 업계 반발로 시행을 보류한 서울시의 실패를 감안한 전략이다.
종합은 물론 전문업체도 반대
권익위 예상처럼 종합·전문할 것 없이 건설업계는 반발할 태세다.
전문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도급계약률 공개는 특정 원·하도급사가 어떤 가격에 공사를 맡기고 받는 지를 대내외에 노출하는 것, 즉 업체의 기술 및 노하우와 관련한 기밀이 모두 새어나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어느 쪽도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이터가 축적되면 건설업체별로 공개된 하도급 의뢰가격과 수주가격이 가격협상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고 기술력이 우수한 업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도급 지급보증이나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여부 등은 가능하지만 낙찰률은 절대 공개하면 안 된다는 게 전문업계의 분위기다. 종합건설업계는 기본적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종합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서울시가 시도했다가 위헌 논란 등으로 포기한 방안을 권익위가 뒤늦게 한탕주의에 매몰돼 꺼내든 탁상행정이며 원하도급간 관계만 악화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도급계약 관련 내용은 건설공사대장 통보 등을 통해 발주기관과 당사자들이 이미 공유하는 사항인데, 굳이 일반에 공개하면 적정, 부적정을 떠나 정부, 발주기관, 건설사 모두의 부담만 가중할 것이란 설명이다.
연구기관의 한 하도급 전문가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청탁 등을 통해 물량을 수주한 일부 부실업체를 걸러내고 전반적 기술경쟁력을 촉진하는 등 거래질서를 선진화, 투명화할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물량이 줄고 공사비마저 빠듯한 현 상황에서 강행하기에는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다른 대안도 ‘무리수’ 비판
하도급계약심사 가이드라인은 건설산업기본법령상 하도급 적정성 심사의 실효성을 보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포괄적인 규정 탓에 심사를 피해가는 업체를 막고 발주기관, 공무원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를 없애는 게 목표다.
기관별 하도급계약심사위의 심사대상에 의무하도급 비율 82% 이상이라도 하도급계약 통보내용이 거짓인 경우, 심사항목별 세부사항을 추가 또는 제외하거나 분야별 배점한도를 가감조정한 경우, 하도급계약 내용 및 하수급인 변경 예외사유를 적용한 경우, 하도급계약 적정성 심사를 재요청한 경우, 발주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경우 등을 추가하는 방법이 검토된다.
나아가 현재 30점인 하도급공사 낙찰비율 배점을 전체 배점의 절반인 50점으로 높이는 등 하도급가격 적정성 점수를 50점에서 60점으로 높이고 하수급인의 시공능력(20점)과 하도급공사 여건(15점) 점수를 각각 10점과 5점으로 줄인다. 하수급인 신뢰도 점수는 10점 상향조정한 25점으로 강화하고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 하도급대금 지급기일 준수, 현금지급 여부, 지급보증서 교부, 직불 및 체불 등을 꼼꼼히 점검하는 방안이 모색된다.
하도급계약 내용을 허위통보(이중계약 포함)한 경우에는 부정당업자로 분류해 입찰참가를 제한함으로써 위반 때 기대이익을 낮출 계획이다. 과태료 처분에 그치는 하도급계약 내용 미통보업체에 대한 제재도 영업정지 등으로 강화하고 건산법, 전기공사업법, 문화재수리법, 정보통신공사업법, 소방시설공사업법상 벌칙 및 과태료 규정도 일원화해 처분 형평성 논란을 막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전문·설비업계는 이들 방안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종합건설업계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과잉처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영업정지 등 건설사에 대한 전반적 처분수위가 현재도 너무 강해 과징금 대체를 허용하는 등의 개정이 추진되고 특별사면 등으로 산업계 타격과 부작용을 줄이는 형편에서 기업경영을 옥죄는 정반대 방향의 정책은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진작이란 실용정부 목표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다른 연구기관의 한 하도급 전문가는 “가이드라인 구성이나 처분수위는 다른 위반행위나 법령과 정밀하게 비교해 비례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부합하게 구성하는 게 합당하지만 이번 개선안은 이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