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 협약 위반까지…못믿을 지자체
민간사업자가 오히려 지자체 검증
민간투자사업의 주무관청인 지방자치단체가 리스크로 전락하면서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자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협약까지 위반하는 곳이 속출하면서 민간사업자를 검증해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민간사업자의 검증 대상이 된 것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자체의 재정난 악화와 일방적인 협약 위반 등 이른바 ‘지자체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민자시장에서 지자체 검증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지자체 중 처음으로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던 성남시를 시작으로 지자체 재정난의 파장이 민자시장을 흔들었다.
일부 지자체들이 재정 부족을 이유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조정을 잇따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자체의 일방적인 MRG 조정 요구는 이미 체결한 협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주무관청으로서 신뢰를 상실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민자사업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지자체가 리스크 신세가 되면서 민간사업자의 신규사업 추진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에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기 전 해당 지자체를 검증하려는 민간사업자가 눈에 띄고 있다.
대심도 철도나 도로 등과 대형 SOC(사회기반시설)사업의 경우 초기투자비만 해도 수백억원에 달한다.
예상치 못한 지자체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민간사업자는 초기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고 상대가 지자체인 만큼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민간사업자가 오히려 주무관청인 지자체를 검증하기 위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재정 여건이 가장 나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와 부산시 등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 일부 대형건설사들은 서울시와 부산시 등에서 추진 중인 대심도 도로 등의 민간제안을 앞두고 지자체를 대상으로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사업 추진에 필요한 건설보조금 등 재정 지원이 가능한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사업의 성공가능성은 있는지 철저히 타진한 뒤 사업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검증 결과 현재 재정 상태로는 매머드급 민자사업을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중도 하차한다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재무적투자자(FI)들도 지자체의 지급능력이 투자심사의 중요한 잣대가 된지 오래다.
FI 입장에서는 지급능력에 대한 지자체의 보장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투자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 안전장치인 지자체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어떤 사업이든 투자가치가 없기 때문에 지자체를 검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 리스크가 신규 민자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지자체가 시장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사전 검증 작업은 필수”라고 말했다.
박경남기자 knp@